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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 코로나19 재난지원금으로 시작된 공룡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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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그린비 작성일20-05-09 12:17 조회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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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재정건전성이 악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염려에도 불구하고,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이 지급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전 국민 고용보험제가 논란이다. 많은 이들이 예상한 바와 같이, 이번 재난지원금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보편적 복지, 본격적인 확장 재정의 신호탄이 되고 말았다. 한 번 하는 것이 어렵지 같은 것을 여러 번 하는 것은 별 일이 아닌 것처럼, 정부와 여당이 마음을 먹는다면 전 국민 고용보험도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확대 재정을 통한 보편적 복지가 시행될 때 재정 부담이 우려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취약계층에서 특히 발생한 실업의 충격이 구직급여 신청으로 표면화되고 있다. 가령 지난 3월의 구직급여 지급액은 9,000억 원에 육박하여 역대 최대 수준을 보였다. 게다가 최저임금이 크게 인상되고 있음에 따라 1인당 구직급여 지급액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적립되어 있는 고용보험기금은 빠르게 소진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만약 가을에 다시금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어 경제적 충격이 부가적으로 발생하면, 올해 연내에 기금이 고갈날 수 있다고 한다. 이렇듯 재정건전성 유지를 위해 적립해야 할 고용보험기금이 바닥을 보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고용보험 적용대상을 자영업자, 프리랜스, 특수직 종사자 등으로 확대시키게 된다면 재정은 더욱 취약하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부담을 감당하기 위해서 고용보험료를 크게 인상시키자 않을 수가 없다. 정부가 보편적 고용보험을 도입하고자 한다면, 보험료의 인상을 국민에게 확실히 인지시키고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순리이다.

재정건전성만이 논의점은 아니다. 도입 과정에 관계된 이들이 과연 고용보험의 가입을 원하는지도 의문이다. 가령 많은 자영업자들은 암묵적으로 고용보험 가입을 거부하고 있다. 소득이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지금도 자영업자들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고용보험을 가입할 수 있으나, 지난 해 기준으로 가입률이 1%도 채 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급격하게 자영업자 경제가 양성화되고 강제적 가입을 추진하게 되면, 그에 따른 경제적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수 밖에 없다.

관계부서인 고용노동부는 획일적 추진이 아닌 단계적 추진을 거론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겠다는 입장도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여당이 총선에서 크게 승리하였으며, 현 정부는 출범 당시 100대 국정과제로서 전 국민의 고용보험을 약속해온 터라, 공약이행 차원에서 실행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이름만 다르지 내용은 보편적 고용보험의 성격을 담은 국민취업지원제도라는 것이 이미 현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데, 이는 저소득층 구직자에 대한 지원금 지급과, 일종의 실업 부조 제도 성격을 포괄하는 법안이다.

명목은 국민취업지원제도가 고용보험과 다른 점은 재원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고용보험의 경우 가입자들의 납부한 보험료로 운영이 된다. 이와는 달리 현재 제출된 국민취업지원제도의 기금은 세금으로 마련된다. 문제는 여타의 복지제도와 마찬가지로 취업지원제도 역시 세대 간 공감대가 필수적으로 형성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세금을 납부할 경제활동세대의 규모는 갈수록 위축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규모가 확대될 수 밖에 없는 복지정책이 켜켜이 쌓이게 되면 그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고용보험의 확대를 위해서 직종별 소통이 요망했던 것처럼, 국민취업지원제도의 도입을 위해서는 세대 간 소통이 요구된다.

물론 아직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고용보험 또는 취업지원제도가 현실화된 것은 아니다. 다만 정부에서 주창하는 사회적 합의라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포퓰리즘에 영합하기 위한 정치권과 노동계의 결탁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왕왕 있어왔다. 강력한 교섭력을 가진 노동단체와 상공업체 간의 균형을 정부가 맞춰주지 못한다면 이번 합의 역시 일방적인 통보에 지나지 않게 된다. 게다가 지금의 주류 노동단체가 여성, 장애인, 청년 등의 사회적 소수자를 원만히 품어주려는 지도 의문인 상황이다. 오히려 있는 자만 더욱 복지의 혜택을 받으며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미래 세대가 없는 자리에서 미래 세대에 부담을 지우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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